우리 악기 이야기

국악기 중 현악기 - 당비파, 대공후, 소공후

우리음악 2006. 5. 7. 19:00
 

당비파




『석명(釋名)』에 비파는 원래 오랑캐들이 말 위에서 연주하던 것으로 손을 앞으로 밀어 소리내는 비(琵)라하고, 손을 끌어당기는 것을 파(琶)라 하니, 이것을 악기의 이름으로 삼았다고 하였다.『고려사』 식화지(食貨志) 문종 삼십년조에 당비파사가 1인 있었다는 기록이있고 효공왕 8년(772)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 적조탑(寂照塔)에 당비파가 보인다.

당비파는 고려를 통하여 주로 당악에만 사용되어 왔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향악에도 사용되었다.
『악학궤범』 권 7 당비파조에는 중국식 조현법인 상조, 하조 이외에 평조와 계면조의 조현 도해와 아울러 당악과 향악의 연주법 설명이 있고, 안상의 『금합자보』에는 당비파보로 만대엽이 전해 온다.
세종때 관습은 여기(女妓)들이 모두 당비파를 배웠고, 성종때 사서인(士庶人)이 음악을 배울때에는 반드시 당비파를 먼저 하였다. 그러나 조선후기에 이르러 당비파는 점점 자취를 감추어 지금은 연주되지 않는다.

 

 

대공후, 소공후



공후는 23줄이고, 소공후는 13줄이다. 현재 국립국악원에 있는 이 악기는 1937년 고 함화진(韓和鎭)이 북경에서 사온 것으로,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