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펌] 판소리 중고제의 발상지 - 벽절 신륵사

우리음악 2006. 7. 9. 15:19

 

남한강가에 있는 탑

 

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석등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문

 

보물 제228호 보재존자 석종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180호 신륵사조사당

 

(사진 위로부터 남한강가에 있는 탑, 보물 제231호 보제존자 석등, 보물 제230호 대장각기비문, 보물 제228호 보재존자 석종, 보물 제225호 신륵사 다층석탑, 보물 제180호 신륵사조사당, 맨 아래는 관람을 하는 외국인들)

 

로부터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어느 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 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이에 원효대사가 7일 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러나 이는 이곳에 절을 짓기가 어려웠던 사실을 전하는 전설일 뿐 정확한 문헌사료가 없어 창건의 유래를 확실히 알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절 이름에 관한 유래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고려 우왕 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암 (馬岩)이란 바위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고려 고종 高宗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 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印塘大師)가 나서서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하여 신력 神力 의 신" 神 " 과 제압의 뜻인 륵" 勒 "을 합쳐 신륵사 " 神勒寺 " 라고 하였다는 것이다.(신륵사 홈페이지)


남한강가. 푸른 물을 내려다볼 수 있는 벽절 신륵사는 신라 때 고찰이라고 전한다. 신륵사에는 많은 보물들이 있어 이 절의 소중한 문화재적 가치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런 것 보다는 이 절집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예전에는 벽절이라고 불릴 만큼 이 절로 들어가려면 여주읍내 쪽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고 하는데 지금이야 다리가 있으니 휑하니 차로 다녀올 숙다 있다. 하지만 조선조 중기 때만 하여도 이 절을 가기 위해서는 배를 타고 건너거나 양평 쪽으로 난 길을 이용하거나 했으리라는 생각이다.


신륵사 남한강 가에 있는 정자에 오르면 속이 다 후련해진다. 지난날에는 금모래, 은모래라고 해서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텐트를 치고 피서를 했던 곳이다. 가을이면 보호스로 지정이 되어 있는 은행나무가 노란 옷으로 갈아입고 입을 날리는 장관을 볼 수도 있다. 이래저래 신륵사는 볼거리가 많아서 좋다. 지금은 입구에 도자전시관이 있어 주말이면 가족들과 함께 신륵사 관광도 하고, 도다 구경이며 입구에 즐비한 먹거리 촌에 들려 배도 불릴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그러나 이 신륵사가 남다른 절집이라는 것 하나가 더 있다는 점이 늘 이곳으로 발길을 옮기게 한다. 바로 이 절집이 우리 판소리의 한 대맥을 형성했던 판소리 중고제(中高制)의 염계달이라는 명창이 이곳에서 10년 공부 끝에 득음을 했다는 사실이다. 염계달 명창은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으로 경기도 여주(驪州)에서 출생을 했다.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재능이 있었다. 헌종 때 어전에서 판소리를 하여 동지(同知) 벼슬을 받았으며, 강경 일끗리의 김성옥(金成玉)과 함께 중고제(中古制) 판소리의 시조로 꼽히고 있다. 정노식의 『조선창극사』에 보면 음성 벽절이라고 하였는데 이는 착각으로 보인다. 벽절은 신륵사를 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염계달 명창은《장끼타령》《흥보가》를 잘하였으며 경기 향토가요조 판소리를 응용하여 여러 대목의 소리를 짜서 경드름[京調(경조)]과 추천목을 새롭게 작창하였다. 특히 《춘향가》 중 《십장가(十杖歌)》 대목을 잘하였는데, 그의 더늠으로 《춘향가》의 <남원골한량> 대목은 경드름으로, 《춘향가》의 <네 그른 내력> 대목과 《수궁가》의 <토끼 욕하는> 대목은 추천목으로 되어 있다.


소리는 대개 강을 끼고 발달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다. 서편제와 동편제가 섬진강을 사이로 발전을 한 것을 보아도 그러하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신륵사는 우리 전통문화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귀한 문화재적 보고임에도 불구하고 신륵사 어디에도 이곳이 우리 소리의 한 대맥을 펼친 중고제의 명창이 득음을 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다. 소리도 멎고 명창도 사라진 벽절 신륵사에는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어 경내를 활보하고 있다. 이곳이 우리 소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는 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