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의 이해

[스크랩] 판소리의 성격

우리음악 2007. 12. 7. 15:10
 

판소리의 성격



국문학도인 우리들은 우리의 전통종합예술인 판소리에 대해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가사인 사설에 대해서만 공부해왔지 그 창, 즉 음악적인 면에 대해서는 등한히 해 온 경우가 많았다. 판소리가 하나의 종합예술체임이 분명하다면 문학 적인 면만을 이해해서는 그 전체를 온전히 이해, 감상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음악적인 면도 문학적인 면 못지  않게 공부해야 한다. 그러므로 본 강의에서는 판소리의 음악적인 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하나의 판소리 공연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설 내용에 걸맞는 음악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 판소리 음악의 특질을 나타내는 것이 唱調라는 것이 있는데, 이에는 평조·우조·계면조라는 것이 있다. 이의 알맞은 변화와 선택에 작품 공연의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 우조는 남성적이고 씩씩하고 활달한 느낌을 주며, 계면조는 여성적이고 애상적이고 처창한 느낌을 주고, 평조는 우조나 계면조의 느낌이 아닌 正大하고 和平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정 병욱 교수가 <한국의 판소리>(집문당, 1981, 42면 이하)에서, 옛 기록과 현대의 기술 등을 잘 뽑아 정리하여 놓은 것이 있다. 이를 발췌 소개하니 정독하여 이해를 깊이하고 판소리 감상 시 적용해서 감상해 보기 바란다.

1) 판소리 음악에서의 창조

(1) 판소리 창조에 대한 옛 기록 우리는 주로 가집의 기록들을 통해서 평조란 웅심하고 정대하며 화평스런 가락을 일컬음이요, 우조란 청장하고 격렬한 감각을 느끼게 하는 창조임을 알았다. 그리고 계면조는 애원하고 처창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알맞은 창조라고 판단한 바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통 성가에 있어서의 창조는 가집을 편찬한 사람들의 배려로 그 격조며 형용을 풍부한 비유를 통하여 어느 정도 짐작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또한 현행하는 창곡을 통해서 그 기록이 허황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판소리에서의 창조는 어떤 문헌에도 언급하여 기록한 호사가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실기진에서는 창조를 구분하여 부르기는 하였으나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지도 못했고, 또 이론적인 면을 기록으로 남기지도 않았다. 그런데 가집이 편찬되던 당시에도 실은 창조의 명칭이 확연히 결정되지는 않았던 것을 전장에 인용한 '가원논가(歌源論歌)'에서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음악에서는 다만 평조·우조·상조의 세 가지 창조가 쓰 일 뿐이다. [我東用樂 只有平羽商三調(歌曲源流)] 여기 나오는 '상조'는 '계면조'를 이름이 분명하나, 명칭이 확정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하겠다. 이렇듯 가집의 편찬자가 창조의 명칭에 대하여 의식이 명확하지 않았을 때 판소리를 다루는 호사가나 이론가들이 창조의 명칭에 뚜렷한 의식을 가지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 판소리 이론의 대가라고 일컫는 신재효의 '광대가'에는 "청원하게 뜨는 목" "애원성 흐르는 목" "낙목한천 찬바람이 소슬케 부는 소리" "왕소군의 출새곡과 척부인의 황곡가라" 등은 분명히 '계면조'를 형용한 표현으로 볼 수 있고, "불시에 튀는 목 벽력이 부딪는 듯" "음아질타 호령소리 태산이 흔드는 듯" "도도와 울리는 목 만장봉 이 솟구는 듯" "톡톡 굴러 내리는 목 폭포수가 솟치는 듯" 등과 같은 것은 그 비유로 보았을 때 우조와 상통되는 창조를 이름이라 고 해석해도 좋을 것으로 보인다. 신 오위장(신재효)의 이러한 막연한 표현과는 달리 그와 같은 시대에 생존했고, 또 그와 문통(文通)이 있었던, <교방제보(敎坊諸譜)>의 편찬자인 정 현석(鄭顯奭)[정 현석은 고종조의 양반으로 벼슬은 황해도감사까지 올랐다. <교방제보>는 그가 진주목사 로 있을 때에 편찬한 것이다.] 이 신 오위장에게 보낸 편지 '증동 리신군서(贈桐里申君序)'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그 평성은 웅심하고 화평하여야 한다.(其平聲 要雄深和平) 그 규성은 청장하고 격려하여야 한다.(其叫聲 要淸壯激勵) 그 곡성은 애원하고 처장하여야 한다.(其哭聲 要哀怨悽愴) 그 여향은 들보 위에 티끌이 흔들리고 떠가는 백운을 멈추게 해야 한다.(其餘響 要撓樑 雲) 윗글은 정 현석이 신 오위장에게 이 경태(李慶泰)라는 광대를 소개하면서 판소리의 혁신안을 제시한 내용 중에 언급된 글이다. 따라서 여기서 말하는 평성·규성·곡성·여향은 각각 판소리의 창조를 구분하여 일컬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네 가지 창조에 대한 기술의 내용과 전장에서 본 전통 성가 의 창조에 대한 설명을 대조해 보면 양자 사이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대응이 가능함을 알게 된다. ① 평성―평조 ② 규성―우조 ③ 곡성―계면조 ④ 여향―? 위에서 ④를 제외하고는 비록 명칭은 다르지만 내용이 완전히 같은 것으로 확인된다. 이것을 보면 판소리는 분명히 전통 성가 의 창조를 그대로 섭취하고, 다시 새로운 창조를 하나 더 개발 첨가했다는 사실도 아울러 알 수 있다 하겠다.

 (2) 판소리 창조에 대한 현대의 기술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신재효나 정 현석이 소박하고도 간략하게 판소리 창조에 대해 기술한 이후에 이 방면의 소식이 망연하더니 1940년에 발간된 정 노식(鄭魯湜)의 <조선창극사(朝鮮唱劇史)>의 [우조 계면조의 분석]이란 항에서 전문이 다음과 같이 된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판소리 창조에 대한 현대적인 기술로는 최초의 언급이라 볼 수 있다. 창극조(판소리 : 필자)에 있어서 기본 되는 조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 조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일은 우조요 기타 일은 계면조니 이것은 결국 목청(音色)이므로 우조는 어떤 것이며 계면조는 어떤 것이라고 설명하기가 자못 어렵다. 직접 소리를 들어서 지적하여 분별할 수 있는 것이고, 말로는 형용할 수 없으나 대체로 그 범위만 들어서 말하자면 우조는 기해단전(氣海丹田) 즉,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이니 담담연온화(淡淡然溫和)하고도 웅건청원(雄建淸遠)한 편이고, 계면조는 후설치아간(喉舌齒牙間)에서 나오는 소리이니 평평연(平平然) 애원하고도 연미부화(軟美浮華)한 편이다, 소리의 기본인 음색을 잘 조절하여서 신경(神境)에 들어 가면 각색의 조가 변화무궁으로 발휘되는 것이다.[정 노식, [朝鮮唱劇史 ], 朝鮮日報社, 1940] 이상 소개한 <조선창극사>에 언급된 창조는 '우조'와 '계면조' 의 두 가지다. 따라서 전통 성가에서 구분되던 3분법 중 '평조'가 빠졌고, 정 현석의 4분법에서는 '평조'와 '여향'의 두 가지가 빠진 셈이다. 그리고 '우조'의 특징은 ① 뱃속에서 나는 소리다. ② 담 담연온화하고 웅건청원하다고 설명하였다. 또 계면조는 ① 후설치아간―알기 쉽게 말하자면 발음기관인 구강(口腔)에서 나는 소리다. ② 평평연애원하고 연미부화한 편이다. 이러한 <조선창극사>의 기술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기술한 업적으로는 박 헌봉(朴憲鳳)의 <창악대강(唱樂大綱)>을 들 수 있다. 이 책의 제3장 2절 [우조와 계면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창악(판소리 : 필자)에는 기본 조처럼 전하여 오는 우조와 계면조라는 두 조가 있다. 이 말은 양악의 무슨 장조니 단조니 또는 당악이나 아악 에서 쓰는 평조니 우조 계면조와는 그 조격(調格)이 다르다. 창악에서 우조 계면조라 함은 일종의 창제(唱制)로 창인이 창하는 그 목청(聲音) 을 단순히 분류한 것으로 즉, 음색과 음량을 청각에 의해 분별한 것이고 어떤 악리적 근거와 악보상의 분석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소리의 한 유별(類別)이라 할 것이다.[박 헌봉, [唱樂大綱], 國樂藝術學校, 1966] 이상은 우조와 계면조의 개념 규정이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① 일종의 창제로 음색과 음량을 청각에 의해서 분별한 것이다. ② 목청을 단순히 분류한 것으로 악리적 근거와 악보상의 분석이 아니다. 그리하여 우조와 계면조를 다음과 같이 그 특징을 설명 하고 있다.

a) 우조 창의 성음이 뱃속에서 우러나오므로 소리가 정중하고 웅화심장 함을 바탕으로 하여 온화하면서 씩씩한 느낌을 주는 창법을 말하는 것이다.(하략) [박 헌봉, [창악대강]]

b) 계면조 성음이 미려청고(美麗淸高)하고 애원처절하며 감상적이다. 한스럽고 고독한 애수가 얽히어 낄 때는 독특한 계면조의 정서 어린 창법이 더욱 효과적인 것이다. (하략) [박 헌봉, [창악대강]] '우조'와 '계면조'의 성격에 대한 이 설명은 각 가집에서 보이는 정통 성가에 관한 기술이나, 앞에서 본 정 현석, 정 노식 두 사람 의 기술 등과 크게 차이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창제를 2 분법으로 분류한 것은 정 노식의 경우와 같은 것도 지적해 둘 일이다. 이 <창악대강>에서는 그 두 창조를 다시 아래와 같은 비유로 비교하고 있다. 우조가 화란춘성(和欄春城)의 만물이 성장하는 봄을 상징한다면 계면조는 서리 내리는 가을 달밤에 기러기 소리 지저귀는 가을을 상징한 격조와 같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우조를 만일 남성적이라고 하면 계면조는 여성적이라 할 수 있다. [박 헌봉, [창악대 강]] 이상으로 보아 정 노식의 <조선창극사>에서보다는 박 헌봉의 <창악대강>에 와서 좀 더 창조의 설명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역대 가집에서 취했던 창조의 3분법에 따른 '평조'의 행방이 묘연해졌을 뿐 아니라, 정 현석의 4분법에 따른 '평조'와 '여향'의 행방 또한 묘연한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정 현석 의 분류에서 '평성' '규성' '곡성' 등은 '×성'이라는 식으로 '성'자를 붙였는데 오직 '여향'만은 '성'이라 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여향'은 문자 그대로 '남은 울림'이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 현석의 서간 문장의 구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여향'은 다른 3조 즉, '평성' '규성' '곡성'과 똑같은 비중을 지닌 것으로 다루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간과할 수 없는 일이라 하겠다. 만약에 정 현석이 4분법을 취했다면 분명히 전통 성가의 3분법 에 '여향'이라는 창법을 하나 더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따라서, 현대의 논자들(정 노식·박 헌봉)은 두 가지의 창법을 빠뜨린 결과를 빚었다고 할 것이다. 현대의 논자들이 이렇듯 2분법을 취하여 '평조'를 거론하지 않았던 이유가 어디에 있었는지 헤아릴 길이 없으나, 현행 판소리 창법에는 분명히 '우조'도 아니고 '계면조'도 아닌 '평조'가 불러지고 있는 것만은 명백한 사실이다. 오히려 '평조'를 근간으로 하여 문학적인 사설의 내용에 따라서, '우조'로도 바뀌고, '계면조'로도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평조'가 창법의 근간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두드러진 변조로 나타나는 '우조'나 '계면조'를 중요시한 결과로 현대의 논자들이 '평조'를 빠뜨렸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가능하다. 그 렇다면 판소리의 창조는 최소한 3분법이 가능하겠는데, 그래도 정 현석의 4분법에 나타나는 '여향'은 아직 미해결로 남게 된다. 과연 이 '여향'이 문자 그대로 '남은 울림'이냐, 아니면 독립된 창조의 한 종류이냐가 문제이다. 이 문제는 앞으로 이 방면의 이론가들이 깊은 고찰과 연구 끝에 결정지을 성질의 과제로 남겨 둘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본인이 조사한 바로는 현행 판소리 창법 중에 '봉황조(鳳凰調)'라는 것이 있는데, 혹시 그것을 정 현석이 '여향'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우리는 얼마 전에 판소리를 주된 소재로 한 <서편제>라는 영화가 나와 한국 영화사상 공전의 인기를 누리고 관객 동원 제 일위를 차지했던 일을 기억한다. 딸의 예술을 위해 그의 시력을 빼앗은 아비의 예술혼을 경외의 시선으로 보았음과 동시에 다소 끔직한 감정도 가졌었음을 추억한다. 여기서 이 <서편제>란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학생들은 생각들을 해 보았 는지,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후 그것을 알아냈는지 궁금하다. <서편제>란 <동편제>와 함께 판소리 流派 중의 하나다. 유파란 창하 는 법, 즉 소리하는 법에 따라 나눈 파나 어떤 모임, 집단을 뜻한다. 그러니까 앞에서 말한 唱調가 소리의 조격, 격식 같은 것이라면, 유파는 주로 지역을 단위로 한, 소리하는 법 즉 창법에 따른 분파를 말한다. 이제는 지역 개념이 희박해지고 순전히 분파의 명칭으로 된 형편이다. 이에 대하여도 앞에서 말한 정병욱 교수의 같은 책(54 면 이하)에서 발췌 소개하니 판소리 음악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기 바란다.

 1. 판소리 2대 유파의 특징

 (1) 동편제 이 동편제 창제는 한마디로 "막 자치기 소리"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 "막 자치기"란, 창법에서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고 "목으로 우기는" 소리를 말한다. 따라서 동편제 소리를 제대로 하려면 선천적으로 풍부한 성량을 타고나야 한다. 동편제의 이와 같은 특징은 요컨대 비기교성이란 말로 대체될 수 있다. 대체로 동편제에서는 장단의 운행에 있어서 그 템포가 매우 빠르다. 기교와 수식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장단에 맞추어 말(言語)을 던지듯이 짜 나간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리고 장단도 '잔가락'(복잡한 기교를 부리는 배리에이션) 없이 "대마디 대 장단"(잔가락 없이 원 박만 치는 장단)이 주축이 되고 그 '대마디 대 장단' 속에 빈틈없이 사설을 채워 한 마루 {{ ) 판소리에 있어서 진양, 중머리, 중중머리, 잦은 몰이, 휘몰이, 엇모리 등의 장단은 한 마루에 어떻게 박자가 배분(配分)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따라서 한 마루란 판소리 음악의 장단을 특징짓는 배분의 단위가 된다. }} 의 장단으로 소리 한 꼭지씩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이처럼 장단의 마루에 충실하고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동편제에서는 자연히 발림(몸짓)을 할 여유가 없어서 연기 면에서는 건조한 인상을 면치 못한다. 그 대신 목으로 우겨대는 특징을 살려서 장단마다 끝을 졸라 떼 기 때문에 건조한 연기를 커버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즉 소리의 끝을 졸라 떼게 되면 자연히 긴장이 풀리지 않고 다음 소리를 기대하게 되므로 '발림'과 같은 연기에는 관심이 흐려질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이처럼 동편제가 비기교적이고 건조한 연기로 일관된다는 것은 그만큼 옛 스럽고 소박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예술 형태가 기교면에서 고졸(古拙)하다는 것은 그만큼 역사가 오래 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된다. {{ ) 이것은 판소리의 특질 면에서도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판소리는 워낙 음악적인 호소력에 바탕을 둔 공연 형태를 보이는데, 드라마틱한 창법은 미세한 기교 가 없어도 청중을 압도하고 매혹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잔가락과 발림 -배우의 동작-의 수식이 필요 없는, 도도한 가락으로 창자의 능력을 과시했다는 기록은 초기 명창의 전기에 보이는 바다. }} 따라서 이 동편제는 판소리 예술이 발생하여 독립된 새로운 예술 형태 로 형성되었던 당시의 수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전통적인 유파로 규정지어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여기서 김 명환의 동편제 소리에 대한 비유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동편제 소리는 어부들이 쓰는 그물 중에서 그물코가 큰 그물로 고기를 잡는 것 과 같다. 그물코가 크면 자연히 자질구레한 고기는 다 빠져나가고 큰 고기만 그 물 속에 남는 것과 같이 동편제 소리는 대충대충 거뜬거뜬한 인상을 주면서도 야멸찬 소리로 이어지는 그러한 창법이라 할 수 있다.

 (2) 서편제 이 서편제는 동편제의 그러한 고졸성(古拙性)을 극복하여 이루어진 기교파를 이름이다. 동편제가 선천적인 음량에 의존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서편제는 후천적인 노력이 그 성패를 좌우하는 것이라 하겠다. 말하자면 가공(加工)과 기교와 수식으로 소리를 "만드는" 유파라는 뜻이 되겠다. 따라서 선천적으로 풍부한 음량을 타고나지 않았더라도 절묘한 기교로써 그 약점을 커버할 수 있는 창법이다. 이처럼 소리에 기교를 부리자니까 자연히 템포가 늘어질 수밖에 없다. 동편제처럼 거뜬거뜬히 소리를 하다가는 "갈 데를 다 못 간다"는 결과를 빚어내게 마련이므로 기교를 부릴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요구할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서편제에서는 소리가 늘어지고 그 템포가 늦다는 특징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장단도 "대마디 대 장단"으로는 맛이 없어져서 자연히 '잔가락'이 많이 끼어들게 마련이고, 소리를 끌고 나가는 데 따라서 장단을 달아 두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꾸어 말하여 동편제에서는 한 장단에 소리를 차곡차곡 해결해 나가지만 서편제에서는 소리 한 꼭지를 몇 장단씩 끌고 나가다가 어떤 마디에 이르러서 소리를 "만들고" 다시 끝을 맺는 수법을 취한다. 이렇게 소리에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연히 '발림'도 풍부하여지게 마련 이어서 연기면에서도 발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고졸하고 소박한 동편제의 경지를 개혁한 이 서편제는 그만큼 기술적인 면에서 향상된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서편제는 정통적인 창법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발전된 유파라고 규정지을 수 있겠다. 그러나 동편제를 고집하는 사람들은 서편제를 이단으로 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서편제에서는 동편제의 고졸한 수법에 대해 소리를 "장작 패 듯 한다."고 빈정대기도 한다. 다시 김 명환의 서편제 소리에 대한 비유를 인용해 보면, 서편제 소리는 어부들이 쓰는 그물 중에서 그물코가 작은 그물로 잡았을 때에 굵은 고기 잔 고기를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모든 고기를 다 잡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동편제가 "대충대충 거뜬거뜬"하다면 서편제는 "곰상곰상 차근차근"한 인상을 주는 유파라고 할 수 있겠다.

 2. 유파와 가풍 및 기교의 구분 앞에서 판소리의 2대 유파가 지니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종래 판소리의 유파에 대하여 <조선창극사>에서는 전술한 동편제와 서편제 이외에 다시 '중고제'와 '호걸제'가 더 있는 것으로 기술하였고, {{ ) 정노식; [朝鮮唱劇史](朝鮮日報社, 1940), p.10. }} <창악대강>에서는 2대 유파 이외에 다시 '중고제', '경도림제', '석화제'의 3개 유파가 더 있는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 ) 박 헌봉; [唱樂大綱](國樂藝術學校, 1966), pp.68-69 }} 그러나 이 두 문헌에서 유파로 본 이들 창법은 유파라기보다는 오히려 가풍(歌風) 또는 기교(技巧)라는 이름으로 처리할 수 있는 특정한 대가(大家)의 스타일로 보는 것이 좀 더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유파와는 달리 가풍 또는 기교로 규정해야 할 몇 가지 이유를 지적해 둔다.

 첫째로 가풍 또는 기교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일련의 창법들은 모두가 지난 날 명창으로 알려진 특정한 대가가 개발한 특수 창법으로서 이른바 '더늠'(어느 대가의 장기로 후배들이 즐겨 부르는 대문)으로 오늘날 까지 변화 없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둘째로는 동편제니 서편제니 하는 것은 그 유파의 성격이 뚜렷하여 자초지종 통일된 창법으로 불러지지만 가풍이나 기교는 일관된 창법을 유지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드름제'가 만일에 유파라면 소리 한 바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 '경드름제'로 불러야 하는데, 이제까지 알려진 바로는 그러한 것이 아니라 어느 대문에 국한하여 '설렁제'니 '석화제'니 '경 드름제'니 하는 것들이 불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셋째로는 이러한 가풍 또는 기교는 앞에서 말한 동편제나 서편제를 가릴 것이 없이 유파를 초월하여 즐겨 부른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즉 동편제나 서편제의 경우를 보면 이 두 유파는 매우 배타적(좋은 의미로)이어서 서로가 뒤섞이는 일이 없다. 그러나 '경드름제'의 경우를 보면 어느 소리의 특정한 대문에 이르면 동편제에서나 서편제에서나 똑같이 이 '경드름제'로 부르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본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이 가풍 또는 기교에 속하는 특수한 창법들은 독립 된 유파라기보다는 어느 대가가 개발한 독특한 스타일로 보는 것이 더 타 당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 서편 어느 유파에서나 자기네의 창제를 제쳐놓고 이른바 '더늠'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대문에는 꼭 특수한 가풍을 인용하여 부르게 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 가풍 또는 기교라 인정할 만한 특수한 창법에는 <조선창극사>나 <창악대강>에 소개된 '중고제', '경도림제', '석화제' 이외에 '덜렁 제'라는 것이 있음은 이 분야에서 널리 알려져 있는 바, <조선창극사>에 서 이름만 들고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은 '호걸제'라는 것이 혹시 이 '덜렁 제'를 두고 한 말이 아닐까 여겨지나 단정할 수 있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상에서 종래의 논자들이 판소리의 유파를 4개 내지 5개로 간주했던 방법을 지양하고 판소리의 유파를 2대 유파로 분류한 점과 나머지는 그것 이 유파라기보다는 가풍 또는 기교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새로운 시도를 제창했거니와,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시도이지 꼭 그렇다고 단정 짓는 결정론을 펴려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이 방면의 연구자들이 좀 더 구체적으로 추구한 끝에 결론은 내려져야 할 것이나 다만 판소리 예술은 그 내용만이 남아 있고 이론적인 체계가 없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유파와 가풍과 기교는 구분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제의해 본 것이다. 앞에서 유파 즉, 창제와 가풍 또는 기교는 구분되어야 한다는 근거를 밝혀 본 바 있다. 즉 <조선창극사>나 <창악대강>에서 중고제, 경도림제, 석화제, 호걸제와 같은 것은 유파라기보다는 가풍 또는 기교로 간주해야 할 것이라고 제의해 보았다. 그런데 필자가 보는 바로는 이 네 개의 특수 한 창법은 그것을 다시 '가풍'과 '기교'의 두 계열로 나누어 정리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즉 석화제, 설렁제, 경두름제의 세 가지 창법은 지난 날 특정 명창이 새로 개발한 대가의 독특한 스타일로서 '가풍'이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성질의 것이고, 다시 '중고제'와 '반드름제', '붙임새' {{ ) 이것은 아직 문헌상에 소개된 바가 없다. }} 는 '기교'라는 이름으로 처리해야 할 성질의 것으로 보았다. 이제 이 가풍과 기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앞의 두 번의 강의에서는 각각 '창조(唱調)'와 '유파(流派)'에 대해 설명하였는데, 이번에는 판소리의 '가풍(歌風)'과 '기교(技巧)'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논자에 따라 유파 속에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정병욱 교수가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는 타당하지 않은 것이다. 그 이유를 잘 살펴보았으리라고 보고 이번에는 그 하나하나의 기법에 대해 정병욱 교수의 앞의 저서(59면 이하)에서 설명한 것을 소개하니 잘 이해해 두기 바란다.

(1) ‘설렁제’ 전술한 바와 같이 이 '설렁제'는 동편제나 서편제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설렁제로 부르는 소리바닥은 없고 동편제 서편제를 막론하고 어떤 레퍼토리의 특정한 대문에 이르면 이 설렁제로 부르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 설렁제는 유파가 아니라 어느 특정한 대가가 개발한 스타일, 즉 가풍으로 규정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설렁제를 개발한 사람은 영조시대의 명창 권삼득(權三得, 1771-1841)이라고 전하여진다. 권삼득은 원래가 광대 출신이 아니라 안동 권씨의 양반의 후예로서 글공부보다는 소리공부에 더 흥미를 가 져 끝내는 광대 행세를 한 이른바 "비갑이"(광대 출신이 아닌 양반 계급출신의 광대를 말한다.)에 속하는 천재적 성악가였다고 보인다.(정노식, 조선창극사,18-20쪽) 그는 영.정.순조 간에 활동했던 이른바 8명창 중의 가장 선배로서 고종조 판소리 평론의 대가 신재효(申在孝)는 '광대가'에서 "권생원(權生員) 사인(士仁)씨는 천 층 절벽 불끈 솟아 만장폭포 월렁 꿜꿜......"(강한영, 판소리 사설 집, 669쪽)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신재효의 이 평언을 질어 추측컨대 그의 창법은 매우 격렬하고도 청고(淸高)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타고난 그러한 재질은 지난날의 전통적인 창법에만 만족할 수가 없어서 이 '설렁제'를 개발한 것이라 보인다. 그런데 이 설렁제는 일명 '호걸제'라고도 할 만큼 호기 등등한 가풍으로서 그 오리지널(起源)은 '권마성(勸馬聲)'에서 나왔다고 한다.(김명환 담) 권마성은 신분이 귀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 행차할 때 말이나 가마 앞에서 하인들이 가늘고 긴 소리로 부르는 일종의 신호 소리인데, 매우 호기 있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현재 전창되는 것으로는, '춘향가'에서는 군로 사령이 춘향을 잡으러 가는 대문. '흥보가'에서는 놀부가 제비 후리러 가는 대문 . '적벽가'에 서는 군사들의 설움타령 중에서 다시 들을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흥부가'의 놀부 제비 후리는 대문은 후세의 전창 자들이 "이 대문은 옛날 8명창 중의 한사람인 권삼득 선생의 더늠인 디......"하며 그의 대표적 더늠으로 소개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조 선창극사에서도 권삼득의 대표적인 더늠으로 이 구절을 소개하고 있다.)

 (2) 석화제 이 창법의 스타일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듣는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인상을 풍기는 가풍으로서, 명랑하고 거들거리는 성음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현행 판소리 중에서는 '춘향가'의 천자뒤풀이 . '수궁가'의 토끼 화상을 그리는 대문과 날짐승의 상좌 다툼 등에서 이 석화제의 기풍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석화제의 창시자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를 찾기가 힘들다. <조선창극사>에서는 김제철(金齊哲) 조에 "김제철은 충청도 출생으로 순.헌.철 3대간 인물이며 송모염고(宋牟廉高)의 후배이고, 주덕기(朱德基)와 동배인데, 사계의 대가이다. 심청가를 잘했고 특히 석화제(가야금 병창제와 근사)를 잘 불렀다고 한다."(정노식, 조선창극사,40쪽) 라고 하여 석화제를 잘 불렀다고만 하였고 창시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창악대강>에서는 '석화제' 라는 항목에 "순조-철종간의 명창인 김계철(金啓喆)에 의하여 비롯되었다 한다. 이제는 가야금 병창제와 비슷한 것이다." 라고 하여 김제철이 아닌 김계철로 그 이름을 표기하고 석화제의 창시자로 내세우고 있다. 김제철과 김계철이 이명 동일인(異名同一人)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인지도 알 길이 없을 뿐 아니라 석화제의 명인자설과 창시자설 도 얼른 판단할 수 있는 증거를 찾을 길이 막연하다. 게다가 필자가 주목하고 있는 제보자인 김명환은 이 석화제의 창시자를 신만엽(申萬葉)이라는 이설을 내세워 필자를 더욱 당혹스럽게 한다. 그의 제보에 따르면 과거에 그가 접했던 많은 명창들이 석화제는 신만엽이 시창하였다고 들었다는 것이다. <조선창극사>에는 "신만엽은 전북 여산 출생으로 후에 고창군에 살았다. 김제철. 박유전과 동배로 8명창 중 1인이 다. 가조가 연미부경(軟美浮輕)하여 당시 사람들이 사풍세우(斜風細雨)의 칭호를 주었는지 모르거니와 그 성망(聲望)이 일대를 풍미하였는지라. 내 어찌 경솔히 붓을 가하랴."(정노식, 조선창극사, 42쪽.) 라고 하였는바 '사풍세우'라는 칭호와 '연미부경'이라는 창법으로 미루어 석 화제의 창시자가 신만엽이라는 이 설이 오히려 타당성이 있을 법도 하나, 확증을 얻기 전에는 단정을 짓기가 어렵다. 이 문제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길 수밖에 없다.

 (3)경두름제 <창악대강>에서는 '경도림제'(보통 '경두름제'라고 한다.)라고 하여 역 시 하나의 유파로 간주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순조-철종 간의 명창인 염계달(廉季達)에 의하여 비롯되었다. 이제는 염계달의 출생지가 경기도 여주이므로 그의 특조를 일러 경도림이라고 한다." 이 설명으로 경두름제는 염계달의 창시인 것이 분명하며 그의 태생이 경기도이기 때문에 그의 특조를 경도림이라 하였다는 것은 곧 그의 창법이 다분히 경기도 토리(음악적인 사투리)가 짙다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현행 판소리에서 이 경두름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대문 은 '춘향가'에서 이 도령의 대화가 내용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다. 춘향 과 춘향 모 또는 향단이나 방자는 남원사람인데 반하여 이 도령은 서울 양반이기 때문에 호남조(음악적인 가락)로 부르기보다는 경기조로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데서 시작된 염계달의 독특한 스타일 이 아니었던 가 추측이 된다. 이것이 하나의 스타일로 확정된 후로 '수궁가'에서는 토끼가 용궁으로 들어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나와 별주부에게 욕설을 퍼붓는 대문에 응용이 되었고 또 '흥보가'에서는 흥보의 박 속에서 나온 비단을 두고 부르는 '비단타령'에 역시 경두름이 나오는 것이 나오는 것을 본다. 이상에서 예시한 대문들에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인상은 분명히 호남 조가 아닌 경기조의 스타일이다. 어떻게 보면 경기 민요의 가락이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들으면 정악(正樂)에서 부르는 가곡(歌曲)의 성조가 물들어 있는 것 같기도 한 그런 특징을 지니고 있다. 호남조가 아닌 경기조이기 때문에 동편제의 후계자였던 송만갑은 서울의 문벌 사저에 초청을 받아 소리할 때는 서울 사람의 기호에 맞도록 이 경두름제를 많이 섞어서 소리를 했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 로 미루어 보더라도 경두름제는 유파라기보다는 가풍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 판소리의 기교

  (1) 중고제 앞에서 살펴본 가풍과는 달리 창법에서 독특한 기교를 부리는 것으로 중고제(中高制)를 들 수 있다. 이 중고제도 종래에는 유파로 간주하여 <조선창극사>에서는 "중고제는 비동비서(非東非西)의 그 중간인데 비교적 동에 가까운 것이다."(정노식, 조선창극사,10쪽) 라고 하여 매우 애매한 설명을 하고 있다. 또 <창악대강>에서는 "동편 서편도 아닌 한 중간제이다. 성음의 고저가 분명하고 명확히 구분하여 들을 수 있으며, 또 소리를 낼 때는 평평하게 시작하여 중간을 높이고 끝을 다시 낮추어 끊는 것이다."(박헌봉,창악대강,68쪽)고 하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중고제란 근본적으로 성량을 풍부하게 타고난 사람이 아니면 흉내도 못내는 창법상의 기교이다. <창악대강>에서도 구체적으로 지적했듯이 소리의 내두름(初頭)은 비교적 낮은 음정에서 시작하여 차츰 높은 음정으로 들어 올려 창하는 사람의 성량이 한계점에 달하였을 때에 다시 음정을 낮추어서 부르는 기교의 이름이다. 이 중고제의 명인은 모흥갑(牟興甲)이었다고 하며, 근세에는 송만갑이 역 시 이 기교를 많이 썼으나, 근래에 중고제의 기법을 쓸 줄 아는 사람 을 찾기 어렵게 된 것은 매우 애석한 일이다.

  (2) 반드름제 중고제가 음정을 위로 들어 올리는 고저에 관한 기교인 반면에 이 반드름제는 한 마무리의 장단 속에 문학적인 사설을 길게 뻗치기도 하고 짧게 몰아 부치기도 하는 장단에 관한 기교를 이름이다. 이 기법은 소리의 경지가 어느 정도 숙달해지면 이른바 "대마디 대 장단"(장단의 박자와 소리의 사설이 규칙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으로는 무미하기 때문에 요구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 기교는 소리에 미숙한 동안에는 불가능하고 높은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가능하며, 듣는 사람들에게도 단조로운데서 오는 싫증을 덜어주는 구실을 한다. (3) 붙임새 위에서 말한 '반드름새'와 마찬가지로 음악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아울러 음악적인 미감(美感)을 더하기 위하여 흔히 이 '붙임새'의 기교를 쓰는 것을 본다. 이 '붙임새'란 장단과 문학적인 사설과의 관계인 바, 말을 놓는 자리에 따라서 '엇붙임.잉아걸이.완자걸이.꾀대죽' 등으로 불리는 기교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교는 말로써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그 이름만 열거하는 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기교가 가장 많이 적용되어서 짜여 진 대표적인 것으로 "흥보가" 중 에서 김창환(金昌煥)제 "제비 노정기(路程記)"를 참고로 들어 둔다.  펌

 

070728        샛별

출처 : 그리움이 흐르는 하얀 강
글쓴이 : 샛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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