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의 이해

[스크랩] [국악의 역사 Part 4] 신라의 음악

우리음악 2009. 4. 28. 15:58

 

 

 

 

 

국악의 역사 Part 4

 

 

 

 

 

                                                신라의 음악                                                  

 

 

 


  옛 진한 땅 경주 지방의 사로국에서 발전한 신라는 삼국 중 가장 늦게 왕국을 건설하여 4세기 후반에 이르러 그 세력이 막강하였고, 6세기에 가야국들을 병합하였으며, 7세기에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삼국을 통일하였다. 신라(B.C. 57년 ~ A.D. 935년) 음악은 통일 이전의 음악과 통일 이후의 음악 두 시기로 나눈다. 통일 이전의 신라 음악은 가야고로 연주하던 음악과 향가(鄕歌)가 있었다.

 


가야고와 음악

 

  가야고는 6세기 전반 대가야국의 가실왕(嘉實王)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 왕은 우륵으로 하여금 12곡을 작곡하도록 하였는데, 후에 나라의 전란으로 우륵은 가야고를 가지고 진흥왕(540년 ~ 576년)이 통치하던 신라로 망명하였다. [삼국사기]는 우륵과 가야고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가야고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당나라의 악기를 보고 이것을 만들었다. 왕이 '모든 나라의 방언이 각기 다른데 어찌 음악이 같을 수 있느냐' 하고 이에 성열현 사람인 우륵에게 명하여 12곡을 작곡하도록 하였다. 후에 우륵은 가야국에 전란이 일어나자 가야고를 가지고 신라 진흥왕에게 망명하였다. 왕은 그를 받아들여 국원(國原)에 살게 했는데, 왕은 대나마(大奈麻)인 주지와 계고, 대사인 만덕을 보내 음악을 전수받게 하였다. 세사람이 이미 배운 12곡이 모두 빠르고 음란하고 아정하지 못하다 하여 드디어 5곡으로 줄였다. 우륵은 이 말을 전해 듣고 처음에는 노했으나, 그 다섯가지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탄복하되, '즐거워도 지나치지 않고 슬퍼도 비감하지 않으니 이 또한 바른 음악이 아니냐' 말하고 왕 앞에서 연주하니 왕이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삼국사기]의 기록으로는 가실왕이 중국의 당나라 악기를 보고 가야고를 만들었다고 하였으나 대가야국의 옛 땅인 진한에 '슬'이라는 '고'가 있었으므로 가야고는 '고'를 개량한 악기가 아닌가 추측된다.

 

  초기에 만든 가야고가 현재 전하는 것은 없지만 신라 시대의 토우(土偶)와 일본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된 가야고를 보면 가야고의 한쪽 끝이 양머리(羊耳頭) 모양에 12줄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모양의 가야고는 지금의 풍류 가야고 또는 법금(法琴)과 같은 것이다. 따라서 초기에 만든 가야고는 지금의 양머리 모양을 가진 풍류 가야고일 것이다.

 

  통일 이전의 가야고 음악으로 우륵이 작곡한 12곡 이외에도 185곡이 있었으며, 하림조와 눈죽조의 두 조가 사용되었다. 우륵이 작곡한 12곡은 거의 당시 지방 이름을 따서 쓴 곡명이며 곡명을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 하가라도(下加羅都): 함안군으로서 법흥왕(514년~540년) 때 아라가야군이다.
  * 상가라도(上加羅都): 고령군으로서 진흥왕(540년~576년) 때 대가야군이다.
  * 보기(寶伎): 금환 즉 금 빛깔의 둥근 공이나 오자미와 같은 것을 가지고 노는 놀이.
  * 달기(達己): 다인현으로 본래의 달기현이다.
  * 사물(思勿): 사주인 사수현, 본래의 사물현.
  * 물혜(勿慧): 이안현, 본래의 마리현.
  * 하기물(下寄物): 개령군으로 옛 감문소국이며 본래의 금물현이다.
  * 사자기(師子伎): 산예라고 하는 사자탈 놀음에 연주되던 음악이다.
  * 거열(居熱): 거창군으로 본래의 어열군이다.
  * 사팔혜(沙八兮): 팔계현으로 본래의 초팔혜현인데 경덕왕(742년~765년)이 초계현으로 고쳤다.
  * 이사(爾赦): 미상
  * 상기물(上寄物): 하기물과 같다.

 

  우륵이 작곡한 12곡의 대부분은 대가야국의 지방 음악이고 나머지는 놀이와 관계된 음악이었다. 제자들이 12곡을 집약하여 5곡으로 줄였다고 하나 5곡의 내용은 알 수 없다. 또, 우륵의 제자 이문(泥文)이 까마귀, 쥐, 메추리 등 3곡을 작곡했는데, 동물의 이름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묘사 음악의 원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진흥왕 13년(552년)에 우륵으로 하여금 계고와 주지, 만덕에게 우륵의 음악을 배우도록 하였는데, 우륵은 그들의 능력에 따라 계고에게 가야고를, 주지에게는 노래를, 그리고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 이 때의 노래와 춤은 가야고와 함께 공연되었는데, 가야고는 신라 통일 이전의 유일한 악기로서 독주와 노래, 춤이 함께 편성되어 연주하였다. 가야고로 연주된 음악과 춤은 궁중과 민간에 널리 퍼졌다.
 

 

 

향 가  


  신라시대부터 고려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제작되어 이두(吏讀)나 향찰(鄕札)로 표기된 민간에서 노래했던 신라의 가요가 향가(鄕歌)이다. 진성여왕(887년~897년)때 위홍(魏弘)과 대구화상(大矩和尙)에 의해 향가를 수집 편찬한 향가집인 [삼대목](三代目)이 없어져 찬란한 신라의 노래를 잃어버렸으나, 일연(一然)이 지은 [삼국유사]에 14수, 균여가 지은 [균여전]에 11수 등 25수가 가사로 남아 있고 [고려사]에 7수, [증보문헌비고] 등에 향가의 제목만 전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음악의 형태나 악기의 숫자, 노래와 춤의 모양도 알 수 없다.

 

  제 3대 유리왕 6년(28년) 최초로 국가가 제정한 향가 도솔가가 생겼다. '도솔'은 원래 '주리', '도리'에서 빌어온 글자로서 도솔가는 농악, 두레의 '두리노리', '도리노리'에 해당하고 또 도살푸리와 살푸리의 뜻을 가진 음악이다.

 

  * 유리왕(24년 ~57년) 때 회악(會樂), 신열악(辛熱樂)
  * 탈해왕(58년~79년) 때 돌아악(突阿樂)
  * 파사왕(80년~111년) 때 지아악(枝兒樂)
  * 내해왕(196년~229년) 때 사내악(思內樂), 물계자가(勿稽子歌)
  * 내밀왕(내물왕,356년~401년) 때 가무
  * 눌지왕(417년~457년) 때 우시악, 치술령곡
  * 자비왕(457년~478년) 때 대악(백결선생이 지음)
  * 지증왕(500년~513년) 때 우인(천상욱개자 지음)
  * 법흥왕(514년~539년) 때 미지악(美知樂)
  * 진흥왕(540년~575년) 때 도령가(徒領歌)
  * 진평왕(579년~631년) 때 날현인(담수 지음)

 

  이밖에도 사내기물악, 내지, 백실, 덕사내, 석남사내, 사중, 달도가, 서동요, 혜성가, 실혜가, 해론가, 원사, 풍요가가 불렸으며, 연대를 알 수 없는 향가도 많다.

 

 

 

 

 

 

 

 

 

 

 [출처 : 풍류마을 http://www.kmusic.org/main.ph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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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강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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