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음악의 이해

잡가(雜歌)

우리음악 2006. 5. 23. 20:22

17~18세기에 발생하여 1920년대까지 성행했던 시가의 한 갈래.

 

 원래 잡가라는 용어는 송만재의 〈관우희 觀優戱〉나 유만공의 〈세시풍요 歲時風謠〉등 조선 중기의 문헌에서 쓰이기 시작했으며, 〈동가선 東歌選〉·〈남훈태평가 南薰太平歌〉 등의 가집에 실린 곡명에서 구체화되었다. 12가사·12잡가·경서남도 잡가·휘모리잡가·단가로 명명되어오던 악곡의 명칭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문학적으로 볼 때는 시조·가사·민요 등과 구별되는 시가류를 지칭한다. 현존하는 잡가집에는 시조를 비롯하여 민요·가사·판소리·창가 등과 국문학의 어떤 장르에도 소속되지 않는 시가들이 실려 있다. 이러한 복합성 때문에 잡가는 한 시대에 걸쳐 상당히 성행한 노래이면서도 개념과 장르적 특질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으며, 연구자들간에도 의견이 다양하다. 조윤제는 가사가 속화(俗化)하여 창곡적 시가로 변하면서 형식적 변동이 일어난 것을 잡가라 했으나, 그 형식이 가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아 가사 속에 잡가를 포함시켰다. 이병기는 민요·속요·동요를 총칭하여 잡가라고 하고, 넓은 의미의 민요로 보았다. 김사엽은 직업적인 가수에 의해 창작·성행되던 것으로 보아 민요와 구분했고, 조동일은 전문적인 소리패가 창작구연한 노래로 된 장르라고 규정하고 서정시가·교술시가로 하위분류했다. 정재호는 1910년대 간행된 〈잡가집〉류를 대상으로 하여, 어느 장르에도 소속되기 힘든 이질적 형식의 시가군을 잡가라 하고, 이때 잡가는 장르 이름이라기보다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부를 수 있는 노래의 의미를 지닌다고 했다.


잡가는 18세기말경 〈청구영언〉 등에서 12가사와 대별되는 명칭으로 태동했으며, 서울지방의 긴 잡가로 남아 있는 12잡가로 기본적인 형태가 정립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대부분의 잡가들이 본격적으로 가창되었으며, 경기지역을 거점으로 하여 1910년대, 1920년대초에 그 유행 범위를 넓혔다. 그뒤 일제강점기의 창가가 유행되기 전인 1930년대까지 잡가는 번창했다. 잡가는 근본적으로 민요를 바탕으로 형성되었으며, 차츰 정악의 시조나 가곡의 분화에 영향을 받아 가락이 시류에 맞게 변천했고, 타령의 장영(長詠)이 조선 후기에 내려올수록 확대되었다. 사설적인 측면에서는 기존의 시조·가사·민요·판소리 사설 등의 영향을 받아 점차 사설이 확대됨으로써 가락과 사설이 동시에 확대되는 동적 구조를 형성하게 되었다.


잡가는 크게 가사·민요·장형시조·판소리 계열의 잡가가 있다. 각 유형은 담당층과 존재양태, 형식구조와 의미구조에서 각각의 특성을 지닌다. 첫째, 가사계 잡가는 그 악곡명칭으로 단가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경기·서도·남도 잡가의 일부가 포함된다. 가창시기는 단가를 기준으로 할 때 18세기 중기에 비롯되었으나, 19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가창되었다. 직업적 광대집단이 주로 가창을 담당했으며, 서민층 이하의 집단 수용층을 구성하고 있다. 4음보격이 기본음보격이며, 자연경관 및 강호한정(江湖閑靜)을 읊었다는 점에서 양반가사의 강호가사와 유사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4음보격이 파괴되고 결사형식을 갖추지 않은 작품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결사형식을 갖추었더라도 전형적 결사형식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의미구조에서도 양반가사보다 훨씬 동태적으로 자연경관을 찬미하고, 호탕하게 풍류의 즐거움을 표현해 자유로운 감정발산을 보여준다. 한문구의 상투적 사용과 시조 장르의 수용 등 상층 장르를 답습·수용한 점에서는 서민가사와 구별된다. 서민가사가 다양하고 비판적인 현실의식을 표출함에 반해 잡가는 지나치게 단순하고 일관적인 내용들을 통해 긍정적·낙천적 정신만을 강조함으로써 구별된다. 둘째, 민요계 잡가는 후렴을 지니거나 분련적(分聯的) 성격을 강하게 지니며, 후렴이 없는 형식이더라도 분련될 수 있는 성격을 지님으로써 일단 민요 장르와 유사하다. 그러나 민요계 잡가는 유흥공간에서 직업 가수들이 주로 가창하는 구연조건과 더불어 작품 자체의 성격이 일반 민요와 구별된다. 내용은 사랑·유흥·무상·풍자·자연찬미 등이 대부분이다. 일반 민요에 비해 한 연의 사설이 대체로 장형이고, 율격 형식이 불완전하며, 후렴이 의미를 취하거나 경쾌한 어투가 삽입된 장형이다. 그리고 동적인 표현방법을 빈번하게 사용했다. 이와 같은 차이는 구연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곧 일반 민요가 주로 생활현장에서 부른 기능요였다면 잡가는 유흥 공간에서 전문적 가창자가 부른 비기능요였기에 유흥 분위기를 조성·고무하기 위해 내용과 형식의 변화가 필요했다. 셋째, 장형시조계 잡가는 장형시조를 그 원사(原詞)로 지니는 것인데, 장형시조에 비해 많은 골계적 사설을 첨가함으로써 사실상 시조 개념을 벗어난 형태이다. 또 종장형식마저 파괴되고 병렬형식을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독창 민요 장르와 흡사하며 골계적 표현을 빈번하게 사용하고 있어 민요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넷째, 판소리계 잡가는 판소리 사설의 부분 대목을 수용한 것인데, 판소리 사설 자체가 이미 내포하고 있는 사설 전개상의 독립성과 병렬형식을 취한다. 판소리 사설에 비해 사설 전개의 독립성을 더욱 심화하고 병렬형식도 보편적으로 사용했다. 율격 형식을 갖추고, 매우 단형의 분량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원사와 구별된다. 따라서 이것 역시 독창 민요와 매우 비슷한 성격을 보여준다. 잡가는 1910년대 활자본 출판문화와 함께 크게 유행하여 새로운 시가의 위치를 차지했다. 1920년대 이후로는 대중가요로 연결되는가 하면, 정리·기록한 잡가집이 보여 해체기의 상황을 보여준다. 잡가는 조선 후기에 기존의 가사·시조·민요·판소리 등의 전통 시가 장르를 포용하여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 장르이다. 그리고 개화기의 창가나 자유시로 전환하는 데 있어 매개적인 구실을 했다. 잡가는 근대로의 전환기에 나타난 문예현상의 하나로서 근대문학으로의 이행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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