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악기 이야기

국악기 중 관악기 - 약, 적, 지

우리음악 2006. 5. 7. 18:43



은 아악 팔음 중 죽부(竹部)에 속하는 관악기로, 단소처럼 세로로 분다. 취구와 지공3이 있다. 예종 11년(1116)에 수용되 ㄴ대성아악을 통해 고려에 들어와서 현재 문묘제례악에서 연주된다. 또한 중묘제례와 문묘제례에서 문무(文舞)를 출 때, 조화로운 음악의 상징으로 무원들이 왼손에 드는 소도구로도 사용된다.

이로 보면 고려 예종 때에는 아악기로서의 약이 들어오지 않고, 육승무의 문무를 출 때 들고 추는 무구로 들어 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 문묘 제향때에 연출되는 문무에 왼손에 약을 들고 춤춘다.

 

 

 

 




 

은 아악 팔음 중 죽부(竹部)에 속하는 관악기이다. 취구와 지공6이 있어서 청공없는 퉁소와 비슷하다. 관대 끝은 그냥 뚫는 것이 아니라, 네 개의 구멍을 파고 도려내어 십자공 모양으로 만든다. 또한 끝에 양쪽으로 옆구멍을 하나씩 뚫는다. 예종 11년(1116)에 수용된 대성아악을 통해 고려에 들어와서 현재 문묘제례악에서 연주된다.

 

 

 




 

(篪)는 아악 팔음 중 죽부(竹部)에 속하는 관악기로, 가로로 분다. 지공은 5이다. 취구에 별도로 의취라고 하는 것을 취구를 덧붙인다. 의취는 관대와 동일한 재료로 만들어 밀랍으로 붙이며, 단소의 취구 모양으로 파여 있다. 또한 보통 관악기와 달리, 관대의 끝부분이 열려 있지 않고, 나무의 마디 부분을 막히게 자른 후 십자 모양으로 뚫어 놓는다. 이를 십자공이라고 하는데, 지의 다섯 지공만으로는 12율(律)을 낼 수 없기 떄문에 십자공을 손가락으로 막아 음의 높이를 조절하기 위한 것이다. 『수서』와 『북사』에 의하면, 백제의 악기중에 지가 있고, 『산당서』에는 고구려 악기로 의취적이 소개되어 있다. 이후 예종 11년(1116)에 수용된 대성아악을 통해 들어와서 현재 문묘제례악에서 연주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