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악기 이야기

국악기 중 현악기 - 가야금, 거문고

우리음악 2006. 5. 7. 18:57

가야금


 

야금의 울림통은 오동나무이고 12개의 현은 명주실로 만든다. 가야금은 맨 손가락으로 타는데 왼손은 안족 뒷편 줄 위에 놓고 줄을 흔들고 누르며 오른손은 줄을 뜯거나 밀고 퉁겨서 소리 낸다. 현을 지탱하는 나무괘는 기러기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안족(雁足)이라 부른다. 일본 쇼소인에 있는 신라금은 경주 지방에서 출토되는 토우(土偶)나 항아리 조각 등에서 발견되는 가야금의 형태와 비슷하다. 그것들은 또한 현재의 풍류 가야금인 법금(法琴)과 같다. 이 가야금은 울림통의 뒷부분을 파고 따로 판을 대지 않았다. 줄 사이가 넓어서 느린음악(音樂)을 연주하기에 적당하다. 근대에 이르러 줄 사이를 좁히기 위해 가야금을 축소하여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만 민요와 산조를 연주하기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이 가야금을 산조 가야금이라고 부른다. 원래 전해오는 가야금은 풍류 가야금(法琴)이라 불러 산조 가야금과 구별한다. 법금의 끝부분은 양의 귀 같이 삐죽 나와 있다고 해서 양이두(羊耳頭)라고 하고 산조 가야금의 끝부분은 새의 꼬리 같다 하여 봉미(鳳尾)라고 한다. 산조 가야금으로 정악을 연주하기도 하지만 대개는 구분해서 사용한다. 왜냐하면 정악과 산조의 조율법 및 수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개 정악을 익힌 후에 산조를 익히는 것이 보통이다.
이 외에 1950년대에 쇠줄을 사용하여 만들기 시작한 철 가야금, 17, 18, 21, 25현 가야금등이 있다.

 

거문고




 

문고의 "고"는 현악기(琴)라는 뜻으로 우리 말이다. 이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가 4세기경의 안악3호분등 고구려 고분(古墳)벽화의 주악도(奏樂圖)에서 발견되었다. 이 거문고는 7C 말경 신라에 전해져 나라의 보물 창고에 보관되었지만 그 후 신라에 의해서 면면히 전승되어왔다. 거문고는 오동나무 몸체 뒤에 단단한 나무로 뒷판을 댄 울림통을 갖고 있다. 몸체에는 윗 쪽에서 아랫 쪽으로 가로 10cm 정도, 높이는 아주 낮은 것부터 6cm까지 되는 16개의 괘가 있다. 해죽(海竹)으로 만든 술대를 오른손 식지와 장지(長指) 사이에 끼고 엄지로 버티어 내려치거나 뜯어 연주한다. 이 때 술대가 부딪치는 부분에 부드러운 가죽을 입혀 잡음을 줄인다. 오른손을 들어 위에서 내려 치는 것을 대점(大点)이라고 오른손을 몸체에 댄 채로 뜯거나 치는 것을 소점(小点)이라고 한다.

문고는 명주실로 된 여섯개의 줄이 있는데 그 줄 마다 이름이 있다. 연주자 쪽의 줄에서부터 첫째 줄을 문현(文絃)이라 하고 둘째 줄은 유현(遊絃), 자현(子絃), 셋째 줄은 대현(大絃), 네째 줄은 괘상청, 다섯째 줄은 괘하청. 여섯째 줄은 무현(武絃)이라 일컫는다. 둘째, 셋째, 네째 줄은 제일 높은 괘(제1괘) 위에 버텨져 모든 괘 위를 지나고 있다. 그러므로 그 괘 위를 줄과 함께 살짝 눌러 밀면 음정이 높아진다. 또한 농현(弄絃)은 누른 손가락의 전진 후퇴로 이루어 진다. 제일 많이 사용하는 줄은 둘째와 세째 줄인데 둘째 줄은 유현(遊絃)이라고 해서 가늘고, 세째줄은 대현(大絃)이라고 하며 상당히 굵어서 소리가 낮으며 유현과 대칭되어 소리에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거문고는 옛부터 학문을 닦는 선비들이 즐겨 타는 것으로 악기 중에 으뜸으로 쳤다. 현악 위주의 악곡에서는 거문고가 합주를 이끌어 간다. 거문고는 음역도 넓어 세 옥타브를 낼 수 있으며 전조(轉調)하기가 관악기보다는 물론, 가야금보다도 수월하다. 한국 악기는 모두가 구음(口音)이라고 해서 입으로 그 흉내 내는 법이 있는데 음에 따라 당, 둥, 동, 징, 등, 덩, 흥, 청하고 내는 거문고 구음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노래가 된다.